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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건곤정협행 수정본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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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3 04:26 1,8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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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4회  일기대면(一奇對面)




해남에서 황산까지는 준마를 타고 달려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다. 그 길을 유운은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내닫았다.


 “소문의 끝자락을 잡고 여기까지 왔다. 평범했던 남궁 가주가 졸지에 혼원일기(混元一奇)라는 별호를 얻고 강호에 이름을 떨치게 된 연유를 밝히면 그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을 게다.”


단단히 작심을 하며 길을 서둘러 어느덧 홍택호(洪澤湖)에 이르렀다. 지금도 여전히 홍택호의 경관은 아름답다. 그 홍택호의 푸른 물결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얽힌 답답한 마음을 가누던 유운이 언뜻 고개를 들었다.


 “그래. 잡다한 소문의 진원지, 그곳에 다시 가보자.”


중원 북부의 흐름을 감지하려면 이곳 사홍(泗洪)의 유명한 주루 화빈원(花賓園)이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얼른 걸음을 재촉해 화빈원으로 들어서니 주루의 객청은 과연 손객들로 가득했다. 빈자리로 안내하는 점원을 따라 자리에 않는 유운이 호수의 경관을 찾아온 유람객처럼 거드름을 한 번 피우고는 이 손님 저 손님 둘러보며 객청에서 오가는 말들에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창문 쪽 자리에 둘러앉아, 문밖 한길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조그만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무림인들의 대화 속에 얼핏 '일기' 란 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유운이 긴장했다.


 ‘혼원일기(混元一奇)의 의형제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화빈원에서 회합을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늘이 마침 그날이라고 한다. 이들의 말이 분명한가?’


거짓이 아니라면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다.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더욱 귀를 곤두세우고 대화를 엿듣던 유운이 확신이 선 듯 급히 사홍언덕으로 달렸다.


 ‘화빈원으로 가려면 이 언덕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이곳을 단단히 지키고 있으면 분명 내 앞을 지날 것이다.’


그들의 대화가 진실하다 확신한 유운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혼원일기 지나가기를 기다리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 서산에 노을이 물들 즈음,

산비탈 저 멀리 고갯길을 돌아 바람처럼 달려오는 무인 모습을 발견한 유운의 눈이 반짝 빛났다. 헌데 체구는 아담하고, 정체를 드러내기 싫은지 머리에는 사립을 쓰고 얼굴은 검은 복면으로 가렸다.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휘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달려오는 그 인물은 먼발치에서 보아도 범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산천을 유람하듯 여유롭게 걷는 모습이었으나 자세히 보면 발은 땅에 닿지도 않고, 마치 바닥 한자 위에 떠올라 허공에 미끄러지듯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그가 펼친 신법은 절정의 상승의 경공이라 알려진 초상비(草上飛)보다도 뛰어나 보였다.


 ‘신법만 보아도 상승의 무공을 터득한 인물이다. 과연 비급의 무공일까?’


언덕 아래에 몸을 숨기고 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던 유운이 순간 긴장했다. 이윽고 그 복면 무인이 눈앞에 다가오자 유운이 그 앞을 막아섰다.


 “대협, 잠시만 멈추시오.”

 “어엇, 누구냐?”


절정의 경공을 펼쳐 바삐 달려오던 초로의 무인은 갑작스러운 사람의 출현에 놀라 급히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러나 그의 신형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귀하는 혹시 황산 남궁가의 가주가 아니시오?”

 “노부를 아느냐? 혼원일기를 아는 놈이 이토록 방자하게 앞을 막느냐!”


유운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혼원일기의 앞길을 막으면 방자한 놈이 된다? 그 참 이상한 말일세. 이 사람은 귀하가 남궁 가주가 아니냐고 물었소이다. 그런데 혼원일기가 남궁 가주와 동일인이시오?”

 “그렇다, 이놈아. 노부가 바쁜 일이 있어 네놈의 무례를 용서하마. 어서 비켜라.”

 “동일인이라? 어허, 언제부터 남궁 가주가 혼원일기라는 허명을 얻게 되었던가?”


은근히 시비꺼리를 만들려는 생트집이다.


 “이놈이, 감히 노부의 앞을 막아 갈 길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시비를 자초하는구나. 그래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아라.”


그래도 말은 점잖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이 청년은 자신이 움직이는 길목을 정확히 알고 기다려 앞을 막아섰다. 복면 무인은 마음속 가득 의문을 품고, 서서히 손을 가슴 위로 들어 올리며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진정 혼원일기 남궁휘가 맞으시오? 강호의 소문에 혼원일기의 무공이 하도 신비막측하여 도무지 가늠을 할 수 없는 소문이 파다해 소생이 한 번 경험을 해 보고자 하오.”


경험? 가르침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경험이라, 이런 빌어먹을 놈이 있나. 감히 혼원일기라는 별호를 듣고도 주눅이 들기는커녕 점점 더 기고만장 억지를 부린다. 그러고 보니 일부러 자신을 화나게 만들어 일전을 벌여 보려는 무슨 꿍꿍이가 아니고서는 이렇듯 막무가내로 대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더욱 이 청년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헌데 청년의 다음 말이 더욱 가관이었다.


 “아니지, 아니야. 호랑이가 사라지고 없는 들판에 여우가 왕 노릇을 하며 괜한 허세를 부리는 게지. 이보시오, 혼원일기라는 어른. 어서 가던 길이나 재촉하시구려.”


혼자 묻고 답하며 떠들던 청년이 이제는 아예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복면 무인에게서 등을 돌리고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겼다.


 “이놈이!”


그처럼 안하무인인 행동에, 조심스럽게 상대를 정체를 살피며 인내하던 초로의 무인은 참았던 노기가 터지고 말았다. 부아를 참지 못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휘익 몸을 날려 유운의 앞을 막아, 발길을 멈추게 만들고는 두말 않고 두 손을 홱 뿌렸다.


- 휘이잉, 그으으응!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순식간에 내지른 장력이었지만 그 위력은 강맹하기 그지없었다.


 “후후후, 암습인가?”


유운이 신형을 날려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맴돈 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스스로 자신을 혼원일기라 일컫는 복면 무인의 면전에 내려앉아 빙글거렸다.


 “돌아서는 사람에게 장력을 퍼붓다니, 혼원일기란 별호를 이처럼 암습으로 얻은 게로구나.”


이리저리 빈정거리며 사람을 놀린다. 그 어투에 더욱 노기가 올랐다.


 “이 건방진, 감히 노부의 심기를 건드리다니. 대체 네놈을 누구냐?”

 “아하… 소생 알릴만한 이름도 없는 무명소졸이외다.”

 “무명소졸?”


듣도 보도 못한 놈이다. 잔뜩 열이 오른 복면 무인이 호통을 치면서도 상대의 무공을 가늠할 길이 없어 내심 경계를 했다.


 ‘어린놈이 내 졸지에 뿜어낸 일 장을 스스럼없이 피하며 면전에 다가섰다. 보통 놈은 아니구나.’


엉겁결에 뿌린 장력이긴 하지만 자신의 장풍을 이렇듯 쉬 피할 수 있는 강호인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데도 이 청년은 가볍게 벗어났을 뿐 아니라 태연히 눈앞에 내려앉았다. 그런 유운의 무공에 조금은 의아함을 느끼며 다시 한번 시험을 해볼 요량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네놈이 노부 앞에 나타난 이유가 뭐냐?”

 “어르신이 남궁 가주가 분명하다면 기필코 여쭐 말이 있어 기다렸소이다.”

 “노부가 남궁가의 가주가 분명하다. 묻고 싶은 말이 있다 했느냐?”

 “그러하오.”


대답조차 끝내 건방졌다.


 “이런 놈을 보았나. 좋다. 네놈이 노부의 삼장을 피할 수 있다면 묻고 싶은 말이 무엇이던 대답을 해 주마. 대신 그대가 노부의 장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내게 무엇을 내어줄 것인가?”


갑자기 나타난 이 청년, 제법 무공을 있어 보이나 아직 강호의 경험은 일천해 보였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조급하게 알고자 하는 모습이다. 그런 유운의 말을 꼬투리 삼아 노회한 언변으로 유인했다.


 “과연 혼원일기로고. 만약 소생이 귀하의 삼장을 받아낸다면 소생의 물음에 한마디 숨김없이 대답을 할 자신이 있소이까?”


유운 역시 객기를 부리는 척 한마디를 던졌다.


 “좋아. 내, 혼원일기라는 별호를 걸지.”

 “별호를 건다? 허면 소생은 귀하가 삼장을 모두 펼칠 때까지 손을 쓰지 않지요. 그리한다면 만족하시겠소?”


어리석게도 아직 경험 미천한 아이일 뿐인가? 천하를 호령하는 혼원일기의 삼장을 손도 내밀지 않고 받겠다며 큰소리 친다. 슬그머니 던진 미끼를 덥석 문 철없는 인물이 아닌가? 이 청년이 스스로의 오기로 감히 목숨을 걸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 어리석은 놈을 한 번 더 추켜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허허허... 대단한 청년이구먼. 노부도 감히 따르지 못할 호기로세. 좋아, 그대의 뜻을 받아들이지. 허나 분명히 하세. 노부가 삼장을 전개할 때까지 그대는 손을 쓰거나 신형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진 것이라네.”

 “좋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왕래가 많은 곳이니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요.”

 “알겠다. 노부를 따라 오너라.”


유운도 빙긋 웃었다. 그 웃음 속에 여러 생각이 흘러 지나갔다.

강호에 나선이래, 아직 자신의 진정한 무공은 한 번도 펼친 적이 없지 않은가? 스스로도 자신이 지닌 천궁의 무공, 그 무공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몰라 잔뜩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능구렁이 같은 작자가 나의 손발을 묶어두겠다? 그래 네놈이 무슨 짓을 하는지 한 번 두고 보자.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지. 이놈의 말을 들어 줄 수밖에!’


혼원일기가 땅을 박차며, 두 마장이 넘는 거리의 한적한 공터로 몸을 날렸다. 유운의 경공을 시험해 보는 동시에 진력을 다해 뒤따르도록 만들어 내력을 소진시키려 하는 수작이었다. 한참을 날아, 언덕 위 제법 넓은 들판을 찾아 내려앉으며 뒤 따르던 유운을 돌아 본 자칭 혼원일기의 표정은 말은 없었으나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어허, 나는 진력을 다해 달려 왔는데 뒤 따른 이놈은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제법 높은 무공을 지닌 놈이 분명하구나.”


재빨리 머리를 굴린 혼원일기가 뒤이어 날아 내리는 유운의 삼대 요혈을 향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삼장을 동시에 날렸다. 얼핏 정체 모를 두려움이 가슴속으로 밀려온 때문이었다.


- 펑, 펑! 퍼엉!


정수리에 위치한 백회혈, 신경의 중추의 명문혈 그리고 견정혈을 동시에 공격한 복면 무인, 스스로 자신을 혼원일기라 말한 그 무인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후후후… 한꺼번에 세 번의 공격이라, 이러면 약속은 지킨 거고…”


유운의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복면 무인의 귓전을 울렸다.


 “어헉, 이... 이런!”


체면불구하고 기습 공격을 가한 복면 무인이다. 허나 그 회심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어안이 벙벙하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복면 무인의 귀에 유쾌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자… 이젠 귀하가 소생의 물음에 답을 할 차례요.”

 “무슨 말을. 내 순간 방심을 한 게야. 그저 네놈의 몸놀림이 어떤가 살펴본 게지. 지금부터 펼치는 삼장이 시작이야!”


복면 무인은 음침 맞은 목소리로 엉뚱한 말을 뱉었다. 동시에 두 손을 앞으로 뻗어 감당 못할 손바람을 뿜었다.


- 크르릉, 콰앙!


복면 무인 장력이 굉음을 울리며 날아들어 유운의 가슴을 무자비하게 강타했다.


 “헉, 으윽!”


무심히 서 있던 유운의 신형은 졸지에 복면 무인을 장을 맞아 수십 보 뒤로 밀려나며 비틀거렸다.


 “이놈, 보았느냐? 약속대로 장을 받아내지 못했으니 노부가 이긴 게 분명 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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