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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건곤정협행 수정본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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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3 04:26 1,48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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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2회 애련동행(愛戀同行)




숲이 우거진 여모봉(轝母峰)의 고개를 넘어 저 멀리 해송 사이로 어느덧 척용세가의 높은 담장이 눈앞에 드러났다.


 “날아올라요.”


옥봉황은 해송 위로 날아올라 장원의 내부를 살펴보자는 눈빛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대문으로 당당히 들어갑시다.”


척용 장주의 주변을 은밀히 살피러 온 주제에 이 무슨 배짱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이는 옥봉황을 뒤로하고 성큼성큼 대문으로 다가간 유운이 척용가의 경내를 향해 찌릉찌릉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 유운이라 하오. 장주를 뵈러 왔으니 어서 장주께 연통을 해 주시오!”


목소리가 후원의 내실까지 들리도록 일부러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 것이다. 그런 유운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곁에 다가서는 옥봉황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운의 고함 소리에 우르르 달려 나온 척용가의 호위 무인들이 두 사람을 막아서며 눈을 부라렸다.


 “웬 놈들이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소란이냐?”


앞을 막아서는 그 무인들의 태도는 제법 당당해 보였다. 소란이 일면 오히려 상황이 복잡해지겠다 여긴 옥봉황이 한 발 다급히 나서며 그들을 향해 정중히 입을 열었다.


 “장주를 뵙고자 멀리서 찾아왔으니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시라 전해 주시오.”


그러나 호위 무인들은 건들건들거리며 얼굴에는 비웃음까지 흘렸다.


 “이런 어이없는 사람들을 봤나. 본가의 장주님께서는 강호의 무명소졸들은 아예 만나지를 않는다. 할 말 있으면 어서 뱉어내고 돌아들 가거라.”


과연 해남에서의 척용가는 위세가 드높았다. 척용세가라 하면 이곳의 행정을 관장하는 포정사조차도 함부로 하지 못할 만큼 당당한 권세를 부리고 있어 넓은 뜰 한 곁에 있는 연무장에는 수련에 열중인 무인들로 가득하고, 주변의 한량들도 척용가와 친분을 맺기 혈안인 탓에 세가의 일개 호위 무인들까지도 이처럼 사람들을 깔보며 기고만장했다.

 

 “이놈들이?”


옥봉황이 노기를 겨우 참는 기색이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유운이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이놈들에게는 그리 예를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말을 듣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어야지요.”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철썩 철썩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소리가 문전을 울리고 호위 무인들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졌다.


 “악, 아악. 이놈이!”


대문 앞에서 진동하는 비명 소리는 연무장의 무인들에게도 들렸다. 그들은 우르르 앞 다투어 달려 나와 호위 무인들 곁에 다가섰다.


 “이보게들, 무슨 일인가?”

 “웬 연놈이 나타나 느닷없이 행패를 부리네. 장주님이 아시기 전에 어서 잡아들이게!”

 “그래? 간뎅이들이 부었구먼!”


척용가의 무인들이 모두 손에 검을 빼어들고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미소를 머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옥봉황이 슬금슬금 뒷걸음을 쳐 담 옆 화단의 섬돌에 걸터앉으며 유운을 올려다보았다.


 ‘이 낭자, 나를 시험해 보겠다는 생각이구나.’


옥봉황의 의도를 짐작한 유운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무인들을 향해 한 발 다가서며 호통 쳤다.


 “장주에게 전하라 했거늘, 막지 말고 모두 비켜라.”


손을 가슴 위로 들어 올리며 한 발 내딛는 유운의 표정은 무인들 앞에서도 한가했다.


 “이놈이 우리를 놀려? 감히 척용가를 어찌 보고 행패냐. 모두 쳐라!”


그 고함 소리를 신호로 열댓 명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유운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두 손으로 내지르는 장풍은 흙먼지를 말아 올리고 칼바람은 제법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떼로 몰려들겠다? 척용세가는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대접이 이렇더냐?”


유운이 손을 훌쩍 휘두르자 달려들던 무인들의 눈앞에 갑자기 하얀 운무(雲霧)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시야에 어른거렸다.


 “어어… 어어어…”


순간 그들의 눈앞에서 흰 그림자가 번쩍 하더니, 장(掌)으로 후려치고 검으로 베어 버리려던 목표물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는 사이,


- 털썩, 털썩, 털썩!


흰색 아지랑이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십여 명의 무인들은 저들끼리 부딪히고 넘어지며 서로 뒤엉켜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그 광경을 멀찌감치 화단의 돌계단에 앉아 지켜보던 옥봉항의 얼굴이 기이하게 변했다.


 “저 공자가 펼치는 신법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도저히 내력을 알 수가 없다. 저 무공에 공력까지도 충만하다면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위력을 발휘하겠구나. 천궁의 무공이란게 저런건가?”


듣도 보도 못한 무공이었다. 검후(劒后) 옥봉황이라 추앙받는 자신조차도 알아볼 수 없는 무공, 때문에 유운이 펼친 무공이 혹시나 사공(詐功)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그 짧은 순간 뇌리에 스쳤다. 옥봉황이 그처럼 의아심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바로 그때!


 “어허, 왜 이리도 소란스러운고?”


육중한 음성이 문전을 울렸다. 대문 앞이 시끄러우며 도검 부딪히는 병장기 소리가 내당까지 흘러들자, 장주 척용환이 무슨 일인가 살펴보려 마당으로 나온 것이다. 그곳에 넘어져 뒹구는 척용가의 무인들, 그들을 일별한 척용장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노한 목소리가 터졌다.


 “이놈들, 너희들이 척용가의 체면을 구겼나. 모두 물러서라!”


노기 가득한 호통을 들은 호위 무인 한 놈이, 넘어진 몸을 힘겹게 겨우 일으켜 비틀비틀 장주의 앞으로 기어와 고개를 숙였다.


 “저놈들이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고 장주님을 뵙겠다며 달려들기에 막아섰습니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손을 써 저희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호위 무인이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자 눈을 들어 흘낏 앞을 바라보던 척용환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호통을 쳤다.


 “못난 놈들, 십 수명이 달려들어 겨우 저 아이 하나를 당하지 못했단 말이냐? 비켜라, 이 쓸모없는 놈.”


발로 걷어차듯 호위 무인을 밀어 버리고 유운의 앞으로 다가온 척용환이 점잖게 한마디를 던졌다.


 “척용가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그 누구도 용서치 않는다. 너는 무슨 일로 날 찾았느냐? 방문한 목적이 합당치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리다.”


그 말에 유운이 아니꼬운 눈빛으로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호호호… 호호호호호...”


낭랑한 웃음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담장 옆 화단 쪽에서 옥봉황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척용 선배님, 무슨 그런 억지의 말씀을 하고 계세요? 저희들은 이곳 호위 무인들에게 예를 다해 선배님을 뵙고자 청했건만 오히려 무례를 저지른 사람은 이놈들이지요.”

 “어어어... 넌 또 누구냐?”

 “장주를 뵙고자 찾아온 무림의 말학, 인사드립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옥봉황을 힐끗 바라본 척용환이 가소롭다는 듯 한마디를 했다.


 “본 장주는 네놈 같은 무명소졸까지 접견할 만큼 한가롭지가 않다. 더 이상 추궁은 않을 것이니 어서 우리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고 물러나거라.”


옥봉황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비록 걸인이 구걸을 하러 찾아 들었다 해도 시원한 물 한 모금 나누는 게 인정인 것을. 일가(一家)의 장주라는 위인이 어찌 이리도 편협(偏狹)한가. 먼 걸음으로 척용가를 찾은 손님을 문전에서 축객하려 하다니. 척용 장주, 내객(來客)을 피해야할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가?”


잠시전만해도 공손히 인사를 하던 여인이 갑자기 자신을 다그친다. 놀리듯 하는 옥봉황의 말에 분노가 치민 척용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이년이? 네년이 시비를 자초하는 구나!”

 “시비라니? 척용 장주, 높은 하늘을 나는 봉황이 하찮은 강호 무림에 시비를 자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봉황? 호… 혹시?”


자신의 앞에서 이리도 건방진 놈이 있던가? 기가 막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찬찬히 여인을 살피던 척용환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했다.

경장 차림에 얼굴은 면사로 가렸으나 인중지봉(人中之鳳)의 자태,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의 곁에 서 있는 청년. 척용한은 언뜻 한 인물이 생각나 불안과 두려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척용환의 표정을 지켜보던 그녀의 입에서 웃음 소리가 터졌다.


 “호호호호… 세상 사람들은 본녀를 옥봉황이라 불러 주었다. 이만하면 장주를 접견할 만한 신분은 되는가?”

 “예엣, 검후 옥봉황? 미처 알아 뵙지를 못해 죄송합니다. 여봐라. 어서 옥 여협을 모시지 않고 무얼 하느냐!”


당금 무림에 검의 제일 고수로 알려진 천하의 옥봉황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척용가를 찾아왔다. 사시나무 떨듯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던 척용환이 애꿎은 호위 무인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 * * * * * * * * * * * * * * * * *


진객을 모시듯 내당의 접객실로 안내를 한 척용환이 얼른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하며 긴장한 표정으로 그 앞을 지켰다.


 “장주님, 어서 앉으세요. 주인이 그렇게 서 계시면 우리가 더 난감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예의를 다하려는 태도로 자리에 앉지를 못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공자는 뉘신지?”


조심조심 물으며 무언가를 탐색하려는 척용환이었다. 그런 척용환의 귀에 무겁기가 천근 같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소. 그보다 척용 장주, 남해 보타암의 참혹한 난행을 이제 한줌 남김없이 밝혀야 할 것이외다.”

 “공자, 그게 무슨 말이오? 아무리 옥 여협의 앞이라 하나 말은 가려 하시오.”

 “모든 걸 알고 왔거늘 아직도 시치미를 떼려하오? 그래, 내가 누군지 말하리다. 나는 연화주에서 모두에게 몽환도의 내막을 상세히 전한 유운이라 하오?”


한마디 한마디가 처절한 유운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척용환은 온몸의 기력이 모두 빠져나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배... 백룡 대협? 모... 모르오, 나는 아무 것도 모르오.”


입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는 척용환에게 유운은 추상 같은 추궁을 이어갔다.


 “척용환, 그대는 얼마 전에도 청성의 환중과 만나 대책을 논의한 일을 본 공자는 알고 있다. 그리고 네놈이 남해에서 저지른 그 추악한 음행 또한 익히 알고 있느니!”

 “아니오. 나는 다만 그놈들의 강요에 못 이겨…”

 “이놈, 척용환. 그러기에 그놈들의 정체를 빨리 밝히라는 말이 아니냐!”


절박하게 추궁을 당하는 척용환은 어쩔 줄 몰라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대협, 정말 모르오이다.”

 “어허, 함께 그 먼 남해까지 동행하고도 모른다?”

 “이 사람이 원래 조나라 왕족의 후예라 자부하며 일가를 이루어 제법 명성은 얻었으나, 세상은 우리 가문을 만이(巒夷)라 부르며 천시를 하더이다. 그래서 혹시 비급이라도 얻어 천하제일이 되면 모두 이 가문을 존경하지 않을까 하는 그 욕심 때문에 따라나섰을 뿐입니다. 그러나 소득은 아무것도 없고 이렇게 궁지에만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래도 무림세가의 장주라는 인물이 변명으로 일관을 하는구나. 고아선승(高雅禪僧)을 능욕한 천인공노의 죄를 저지른 그 잘못만으로도 쳐 죽여도 마땅할 장주의 목숨을 불쌍히 여겨 그놈들의 정체만 밝히면 살려 주려 했는데,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구나!”

 

유운의 다그침을 냉철한 모습으로 지켜보던 옥봉황이 조용히 한마디를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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