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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극장

만리건곤정협행 수정본 150

야판
2022-10-03 04:26 1,86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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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0회  본색현출(本色現出) 4




먼동이 터 동녘하늘이 뿌옇게 밝아오는 시각, 청성을 떠나 다시 옥봉황이 머무는 객잔을 찾은 유운이 객잔의 담장을 소리 없이 뛰어넘었다.


 “잠이 들었는가?”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객방의 창문 곁으로 다가서던 유운이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문은 열렸으니 나를 찾는 손님이면 들어오시고 아니면 조용히 물러가시오.”


방안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미 누군가의 기척을 감지하고 있던 옥봉황이다. 헌데 방 안으로 들어서는 유운을 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또 너냐?”

 “예, 낭자. 소생이외다. 허나 그보다, 말 한마디에 청성의 제자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재주, 과연 대단하오.”

 “그게 무슨 말이냐?”

 “검후라 무림의 존경을 받는 옥봉황이 아니오? 그런 여협이 청성의 제자와 장문인의 자리를 놓고 야합을 하다니…”


비웃듯 한 목소리로 불문곡직 내뱉는 유운의 말에 옥봉황이 깜짝 놀랐다.


 “야합이라니, 가만… 네놈이 나의 뒤를 미행했느냐?”


순간 옥봉황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미행은 무슨… 그저 구명의 인사라도 드리는 게 옳다 여겨 뒤를 따랐을 뿐인데…”

 “뭐라? 그대는 분명 혼절을 해 분간이 없었을 텐데, 어찌 내가 그대를 구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천하의 옥봉황이 무공 높음을 빙자해 청성을 어지럽히려 한다는 사실이 오직 강호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 아니던가?”

 “어허, 그대 따위가 간여할 사안이 없는 일, 청성에서의 일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이 청년이 자신의 행동을 너무나 속속들이 알고 있다. 속 시원히 설명을 하여 사정을 밝히려 해도 사문의 명예가 걸린 중요한 사안인 만큼 자세히 알리지도 못하고 마음만 답답해하는 옥봉황에게 유운이 속을 긁었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라 환중 도인에게 화골환이라 거짓말까지 해가며 그를 핍박했단 말이오? 혹시, 무림을 그 손아귀에 넣기 위해 청성부터 장악하려 했소?”

 “이놈,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하지 않는가!”


아무도 모르게 환중 도인과 단둘이서만 이루어진 말과 행동, 그 모든 일들을 정제모를 이 청년이 마치 함께 행했던 일처럼 모조리 알고 있다. 은밀히 자신의 뒤를 추적하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들이었다. 순간 옥봉황의 머릿속에는 남해의 그 처절한 음행과 살육이 불현듯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보타암의 사건을 파헤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이 나의 행동을 감시하려 보낸 놈이 아닐까?’


어쩌면 숨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저들이 저지른 만행이 온 천하에 드러날까 염려해 미리 강호의 소문을 파악하고, 자신들의 뒤를 쫓는 그 싹을 자르려 파견한 살수(殺手)는 아닌가 하는 의아심이 든 탓이다. 만약 이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보내진 인물이라면 더없이 좋은 기회라 여긴 옥봉황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잠깐, 네놈이 어찌 나와 환중 두 사람이 나눈 말을 그리도 소상히 알고 있느냐? 그러고 보니 연향루에서의 그 일도 내게 접근하기 위해 부상을 당한 척 속였구나. 이놈, 어서 너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겠느냐?”


옥봉황의 추궁에도 유운은 피식 웃음부터 흘렸다.


 “후후후... 내 정체라, 그 보다 낭자가 청성의 제자를 회유한 그 이유를 먼저 밝히시오. 아니면 옥봉황이 청성을 손아귀에 쥐려한다고 강호 무림에 모두 알릴 것이오.”

 “내가 아니라 했거늘! 이놈, 어서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이 손이 네놈을 가만 두지 않을 게다.”

 “푸훗, 말문이 막히니 무력이라? 검후 옥봉황이란 인물의 진면목이 겨우 이것이었던가? 쯧쯧, 그만 두시오. 나는 돌아가리다. 후후... 후후후후… 앞으로 강호 무림에 어떤 소문이 떠돌까?”


상대를 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듯 혀까지 차며 돌아서는 유눈을 향해 번개같이 몸을 날린 옥봉황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내, 그대의 눈에 악의가 없어 많은 양보를 했다. 해서 네놈의 정체만 밝히면 뒤를 파헤친 그 죄도 용서하려 했건만 안 되겠구나. 이놈,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말과 동시에 옥봉황의 손이 유운의 완맥을 낚아채려 번개같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파혈장(破穴掌? 어림없는 일!”


손이 유운의 손목에 닿기도 전에 눈앞의 인영은 온데간데없고 완맥을 향해 날아가던 옥봉황의 손목이 오히려 따끔 아파왔다.


 ‘아차, 내가 저놈을 너무 얕보았구나.’


옥봉황은 재빨리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순식간에 위로 날아올라 유운을 향해 또다시 양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에서 발휘된 장력은 전광석화와도 같이 유운의 왼쪽 팔 천정과 곡지의 두 혈도를 향했다. 그리고 다른 손에서 펼쳐진 장력은 뒤이어 오추와 유도 두 혈을 찍으려 날아들었다. 전신의 다섯 군데의 혈도를 한순간에 노리며 유운를 그 속에 꼼짝없이 가두어 버린 형국이었다.

순간,

백색의 그림자가 옥봉황의 시야를 흐리며 그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 원의 움직임에 방안에는 온통 하얀 그림자가 가득해 유운의 형체는 눈 속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 그림자 속에서 호쾌한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보시오, 낭자. 대단하구려. 옥봉황이란 별호가 과연 어울립니다. 자자… 우리가 이리 다툴 필요는 없지요. 그만 손을 거두시오. 소생이 낭자께 호기를 좀 부려 보았습니다.”


말과 동시에 옥봉황이 뿌려낸 장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면에 웃음을 띤 유운이 그녀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어어어어?”


당금 강호에 옥봉황의 한 초를 피할 인물이 있었다니? 아무리 살펴도 어수룩한 그의 행동을 보면 강호에 첫 출도한 이름 없는 청년이 분명한데, 자신이 펼쳐낸 무공을 장난처럼 벗어난 것만으로도 부족해 어느새 혈도까지 툭 건드리고 눈앞에 태연히 미소를 머금고 서 있다. 기가 막혀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그런 옥봉황에게 유운이 정중히 입을 열었다. 


 “낭자, 아니 옥 여협. 용서하시오. 소생이 불경스럽게도 여협의 뒤를 미행해 백운각의 천정에 숨어 있었소이다.”

 “뭐라 하셨소? 이 옥봉황의 오감을 속이고 내 뒤를 미행했다는 말이에요?”


이 청년이 청성까지 들키지 않고 뒤를 쫒아 백운각의 천정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또한 환중 도인과 그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천정 위의 존재를 추호도 눈치 채지를 못했다. 대단한 은신 공력까지 지닌 인물이 아닌가!


 “공자가 천주산 중턱 화운봉에서 날 불러 세울 때 예사 인물이 아니란 짐작은 했어요. 이 옥봉황도 감당 못할 무공입니다.”


천하제일이라는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유운에게 우선 칭찬부터 했다. 과연 옥봉황도 영걸중의 영걸이었다.

 

 “어허, 과찬이에요. 부득이 한 사정으로 뒤를 미행할 수밖에 없었소이다. 이곳 객잔까지 뒤를 쫓아 옥 여협께서 이곳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다시 청성으로 달려가 환중 도인의 입에서 새로운 사실도 밝혀내고 왔습니다.”

 “뭐예요? 새로운 사실이라 하셨어요?”

 “예, 새로운 한 가지 사실을…”


자신도 알아내지 못한 비밀을 한 가지 더 캐내고 왔다고 한다. 대체 이 청년의 정체가 뭔가, 유운의 한마디 옥봉황의 머리는 더욱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진즉 귀인을 알아보지 못해 죄송해요. 그런데 공자께서 또 한 가지를 알아내었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천장에서 환중 도인을 심문하는 걸 지켜보았다고 했다. 빈틈없이 그를 다루어 알아낼 건 모두 알아냈다 여긴 옥봉황이었다. 그런데, 강호초출의 아둔함과 그의 몸속에 지닌 가늠할 길 없는 무공이 부조화를 이룬다 생각한 이 청년이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정황을 알아내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처음 강호에 나온 철부지라 판단한 자신이 오히려 어리석었다는 자책에 옥봉황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환중 도인이 말하던 그 한 사람이 척용세가의 장주 척용환라고 실토를 했습니다. 이제 나머지 다섯의 정체만 밝히면 됩니다.”

 “그 정도는 나도 짐작했던 일이예요.”


겨우 그건가? 옥봉황이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그래요. 그 정도는 당연히 짐작을 해야지요. 그런데 옥 여협, 이 사람이 환중 도인에게 들은 말이 또 있습니다.”

 “어서 말씀해 보세요. 무엇이라 하더이까?”


옥봉황이 금방 긴장을 하며 유운을 재촉했다.


 “환중의 말이, 그들 중 수괴인 듯한 인물의 행선지가 세가란 말을 언뜻 들었다 합니다. 대 공자가 세가로 먼저 간 건 아닌가 해다니 그 사실이 확실하다면 놈들을 추적하기가 훨씬 수월해지지요.”

 “세가라? 무림에 제법 행세하는 세가가 있긴 하지요. 오옷, 가... 가만. 그렇구나!”

 “……?”

 “과연 뛰어난 안목,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공자가 일깨워 주셨습니다. 고마워요.”    


옥봉황이 얼굴 가득 존경의 빛을 담고 고개를 숙였다.

조정의 정치에만 몰두하던 황궁세가가 어느 날 갑자기 연회를 열었다. 그도 자신의 좆엉 출사를 핑계로 벌인 연호였다. 그 자리에 구유곡의 제자라는 여인들이 나타나 대 공자라는 인물을 구유곡으로 초대해 갔다. 그런데 이 청년이 세가의 인물이 관여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틀림없이 그 일과 연관이 있다고 여긴 옥봉황이 다시 한번 유운의 영민함을 칭찬했다. 상대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질시하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옥봉황 역시 보통의 배포를 지닌 인물은 아니었다.


 “소생도 절박하게 알아내야만 할 사안이 있어 청성 도인들의 뒤를 미행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여협께서도 그들을 주시하고 있더이다. 해서, 예의 불문하고 여협의 뒤를 따랐습니다.”

 “공자도 청성의 도인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자는 뉘시오?”

 “어허, 절박한 사정이 있는 사람이라 방금 말씀드렸지 않소. 헌데 뭘 더 알고 싶으시오. 소생도 궁금한 게 많으니 여협께서 답을 좀 해 주시오.”


정성을 다해 물었으나 정체는 밝히지 않고 오히려 알고 싶은 게 있다며 되물었다.


 “그래, 뭐가 알고 싶으세요.”

 “으음, 그게... 여협께서는 몇몇 문파의 독문 장력을 고의로 받아내고 다녔지요. 그 이유가 뭔지 알려 주시겠소?”

 “이런, 왜 그걸?”


이 청년이 기어이 신분은 밝히지 않고 역으로 캐묻는 말이 자신의 행적이다. 옥봉황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운을를 훑어보았다.

지난 그때,

해남을 떠나던 날 천주산 중턱 화운봉까지 뒤따라와 억지를 부리던 그를 보며, 그저 무언가 사정이 있는 청년이라 여겼을 뿐이었다. 헌데 지금의 말로 유추하면 자신의 뒤를 캐고 있었다는 말이다. 헌데 이 청년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미행했고, 또다시 환중을 추궁하려 했는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청년이다.


 “왜 대답을 안 하오? 그럼 한 가지 더 물읍시다. 소생에게 진기를 불어넣던 날, 어찌하여 내 몸에 나타난 장흔을 보고 놀라셨소?”

 “어어, 그대는 진정 혼절한 척 한 겐가? 그럼 나도 한 가지 묻지. 이보시오 공자, 그대는 어찌하여 몸소 장을 받으셨소?”


옥봉황의 어조가 또다시 날카로워졌다.


 “나 말이오? 흉내 내어 본 게지. 여협이 그 여린 몸에 직접 장을 맞고 다니 길래 나 또한 그리 해 보았소. 여협께서 직접 몸에 받아내는 그 장흔 속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나 해서 말이오. 헌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유를 모르겠더이다.”


농처럼 말을 하고는 있으나 그의 눈빛은 너무나 진지했다.


 ‘필시 깊은 사연은 있다. 그런데 쉬 발설하지는 않는다. 무슨 사연일까, 혹시?’


언뜻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면 먼저 마음을 열어야 자신과 얽힌 지난날의 상황을 명확히 할 수가 있다. 결심을 굳힌 옥봉황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꼭 알고 싶어요?”

 “예, 여협. 말씀해 주시오.”

 “남해에서의 기막힌 사연 때문이었어요. 암자 선방에 내팽개치진 시신, 그 여승의 시신이 너무도 끔찍했지요. 묻어 주었습니다.”


태연을 가장하며 듣고 있던 유운의 마음이 요동쳤다.


 ‘이 사람이었나? 이 여인이 보련 신니의 시신을 묻고 그 앞에 신니의 묘비를 세웠는가?’


연화주에서 유운 자신의 뱉은 무하도란 말 한마디 때문에 음적들에게 난행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보련 신니다. 유운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옥봉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시신을 수습하던 중 시신의 몸에서 발견한 장흔이 일곱 개, 그런데 단서는 방 바닥에 피로 새겨진 적하검이글자 단 하나, 아마 강호 일곱 문파와 시신에 새겨진 장흔은 분명히 연관이 있다 여겨 내 몸으로 일일이 장을 받아 본 것이에요.”

 “그래서? 장흔이 문파의 독문 장법과 일치했습니까?”

 “그게, 겉으로 드러난 모양만 같았지 근본은 달랐습니다. 누군가가 일곱 문파에게 누명을 씌우려 그리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헌데 여협께서는 그 먼 곳 남해까지 어인 일로 가셨는지?”

 “사부님의 밀명을 받아 누구를 추적하던 중이었어요. 그들의 행적을 뒤따르다 돌아와 보니 그런 처참한 상황이 벌어져 있었어요.”

 “사부님의 명이라. 여협의 사부는 뉘시오?”


목소리조차 떨리는 유운의 말에 옥봉황이 싱긋 미소를 흘렸다.


 “이보시오, 공자. 내 말만 들을 참이오? 이제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오?”


유운은 그 말에 대답은 않고 옥봉황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누군지는 잠시 후에 말씀드리리다. 그보다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상세히 말씀해 주시오.”


눈가에 눈물까지 맺혀 있다. 옥봉황은 그런 유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는 않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지난날의 상념에 잠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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